고민상담을 하기엔 좀 부끄러운 나이입니다.
이 날이 되도록 제 앞가림이 안되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다시 한 발 딛도록 마음을 다지는데 도움을 받고자 익명의 힘을 빌어 씁니다.
삶이 고단합니다.
70년대 말, 한창 대한민국에서 입양아들을 해외로 내보낼 때 동생과 입양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지나 자녀 수에 따른 보조금이 입양아를 제외하도록 제도가 개정된 직후 양부모에게서 파양되었습니다. 시설 몇 곳을 전전하다 고국 분들의 도움으로 돌아온 후에는 마포쪽 시설에서 자랐습니다.
그 때 이미 남들보다 없이 시작한다는걸 알고 있었고, 무얼 하든 눈치를 봐야 하는 환경에서 그래도 성적 하나 잘 받으면 자기 자식 일처럼 기뻐하시던 분들이 계셔서 공부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 고마운 분께서 첫 등록금까지 손에 쥐어주신 덕분에 좋은 대학에도 진학할 수 있었고, 오지 말라는 군대도 오기로 다녀오면서 9년 걸려 졸업도 했습니다.
졸업할 무렵에 아내를 만났고, 아버님이 집어던지신 무언가에 머리도 깨져가며 참 어렵게 결혼했습니다. 이 나이에 내가 너랑 같이 일반사원인데, 우리 딱 4년만 같이 고생하자. 부족할 것 없는 집안에 들이댄게 나라서 참 미안한데 평생을 너에게 갚으며 살겠고마 했습니다. 둘 다 정신없고 늦게까지 일에 매여있는 기간이 4년 보다는 더 길어졌지만 그 가운데 즐거운 시간도 많았고, 소소하게 다투어도 다음 날 아침에 침대로 좋아하는 계란토스트 만들어 바치며 풀고... 그러면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찾고 찾아 친모를 만났습니다.
경기도 모 시에서 술집을 하시더군요. 첫 인상은 한 줌 닮은 구석도 찌든 삶에 가려진 늙은 작부였습니다. 결혼식까지는 모시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 세상에 내고서 단 몇년이라도 같은 방에서 몸 데우며 산 시간이 있지... 그간 또 이렇게 살면서 얼마나 구차하고 부대꼈을까.. 하고 용서하고 닫았습니다. 그때는 내가 이 사람의 혈육이라는 생각이 지난 서운함을 덮었던 것 같습니다.
간간히 연락 주고받으며 지내다 어느 날 갑자기 이 분이 우리 집에서 같이 살잡니다.
화를 넘어서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이 분이 정말 갈 곳이 없었습니다. 가게는 아줌마 접대부들에게 줄 월급부터 채무자들 빚까지 쌓였고 사는 곳은 월세가 1년 가까이 밀렸더군요. 그 때 정말 고민 많이 했습니다. 이 사람이 나한테 왜 이러나부터 여기서 내치면 이 노인은 어떻게 사나, 만에 하나 오시라고 해도 집사람에겐 뭐라하고 처가에는 뭐라고 해야 하나. 참 제가 세상물정 몰랐습니다.
그런데 집사람이 다 받아줬습니다.
"당분간이고마."하고 들어와서 열달 넘게 안방 아랫목 차지하는 것부터 둘 다 밖에서 사먹던 삼시세끼를 식탁에 차려놔야 하는 것까지. 월급 받으면 다달이 꼬박꼬박 함께 집어넣던 통장에 제가 넣는 액수가 60만원 줄어든 것부터 웬 영감 집에 데려와서 여기다 살림 차린다길래 빌고 빌어 내보낸 것까지. 처가에 불려가서 당연한 욕 들을 때에도 옆에서 그래도 어머님이라고 역정 들어준 것도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다 받아주다가 술에 만취해서 옆집 아주머니랑 싸우는 그 분 말리던 도중 머리채 잡히고 걷어채여서 뼈에 금이 가고, 유산했습니다.
아무 말 못하고 이혼했습니다.
내내 싸늘하셨지만 결혼하기 전 따로불러 제 손 잡고 딱 한번 고개숙여 부탁하셨던 장인어른, 씨암탉은 없다고 치킨맥주 시켜주시던 장모님, 내 형제나 마찬가지로 아끼던 우리 처남부부, 그 일 이후 처가 근처에도 못가다 숙려기간 끝날 무렵 전화로 그저 자기가 미안하다던 집사람. 할 말이 있으면 그게 금수겠지요... 경찰서에서 악다구니 쓰는 그 분과 멸시에 찬 말을 토하는 처가 사이에 고개숙이고 있을 땐 사는 가운데 지옥이 이런거구나 싶었습니다.
햇수가 2년이 되었습니다.
저도 이직하고 이사하고, 따로 사람 만나는 일 없이 정신줄 놓고 직장만 다녔습니다.
그런데 친모가 원래 살던 곳 주변에서 뭐라도 하고 서로 없는셈 치자고 3천만원 들려 내려보냈는데 지난 연말에 돌아가셨습니다. 노친네가 약물과용 후 스스로. 2년 전 통장으로 큰 돈 넣어드린 것 때문에 이놈 필로폰사범 아닌가 하고 또 경찰서 가서 진술하고, 돌아가신지 4일만에 찾아가 화장하고 유골함 챙겨 나오는데 뒤에서 안치소 직원들이 나흘만에 나타난 저런게 바로 호로새끼랍니다. 하하.
새해 첫날 삼오제 마치고 집에 와서 앉아있는데 이게 다 뭔가 싶고
전화기 들고보니 이런 얘기 붙잡고 할 사람이 이 나이 되도록 한 명도 없고
가까운 이에게 죄는 지었어도 정말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다 부질없고 그저 피곤하고 눕고만 싶습니다.
두면 지나가겠거니 했는데 오래갑니다.
출근 안한지 보름 좀 넘어가네요.
일주일까진 엄청 연락오다가 이젠 나오거나 말거나.
나가서 소문 다 났을 그간 가족사 읊으며 뭔지모를 눈길 받는 것도 싫고..
그것도 어미라고 며칠 지나니 좋았던 잠깐잠깐이 생각나고,
아닌거 아는데 곧 새출발 할 집사람 얼굴도 한 번은 보고싶고..
마흔 언저리 되어서 이게 웬 주책질인지..
사는게 고단합니다.
슬프다 괴롭다 아프다 이런게 아니라..
하루종일 목 뒤에 미지근하게 젖은 수건이 얹힌 것처럼 마냥 고단합니다.
정말 그냥 두면 또 흘러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