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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펄쩍펄쩍 뛰어와 집 집어삼켜”…겁에 질린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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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5.07 21:45
강릉·삼척 화재에 주민들 망연자실
화마 덮친 마을 폭격 맞은듯 쑥대밭
성산초교로 대피한 300여 이재민들
은박지에 몸 누이고 뜬눈으로 지새

7일 강릉 성산면 관음리에서 만난 최종필 할아버지가 산불로 폭삭 주저앉아 까맣게 탄 흔적만 남은 집 앞에서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7일 강릉 성산면 관음리에서 만난 최종필 할아버지가 산불로 폭삭 주저앉아 까맣게 탄 흔적만 남은 집 앞에서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강풍에 불이 순식간에 옮겨붙어 놀란 마음에 고무신만 신고 뛰쳐나왔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합니다.”

 

7일 오전 강릉 성산면 관음리에서 만난 최종필(74) 할아버지는 “남은 게 하나도 없다”며 망연자실한 눈길로 잿더미가 된 집을 바라봤다. 최씨 집은 불에 폭삭 주저앉아 까맣게 탄 흔적만 남았다. 최씨가 급하게 신고 나왔다는 하얀 고무신 곳곳에도 까만 재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백발인 최씨의 헝클어진 머리 곳곳에도 거뭇거뭇한 재가 내려 앉았다. 최씨는 “어제 오후 빨리 피하라는 산불감시원의 말을 듣고 딸네 집으로 대피했다 아침 일찍 돌아와 보니 이렇게 됐다”며 탄식했다.

 

 

최씨가 58년째 살던 집은 산불로 하룻밤 사이 잿더미로 변했다. 돌아온 집은 폭격을 맞은 듯 처참하게 무너져 있었다. 바닥엔 검게 그을린 철판이 나뒹굴고 타다 만 나무 기둥이 흉물스럽게 버티고 서 있는 등 화재 당시의 처참함이 묻어났다. 최씨의 집 뒤 야산도 불에 타다 남은 나무들만 앙상하게 남았다. 자신을 12대 종손이라고 소개한 최씨는 “족보도 못 챙기고… 조상님들을 어떻게 뵐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떨궜다.

 

 

이웃 유동희(79)씨도 밤새 잠을 설친 듯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유씨도 이번 산불로 집이 불에 타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었다. 유씨는 “바람이 강하게 불어 저 멀리 불이 붙는가 싶더니 펄쩍펄쩍 뛰어 순식간에 집까지 집어삼켰다. 걸어서 피난을 나오다 경찰차를 얻어타고 겨우 대피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유씨의 아내도 “내일이 어버이날인데 이게 뭔 난리인지 모르겠다. 자식들도 오겠다하는데 걱정할까봐 별일 없으니 오지 말라고 말했다”고 말하곤 고개를 저었다.

 

 

전날부터 이어진 산불로 50여㏊의 산림이 재가 돼버린 강릉 성산면 관음리 입구로 이날 오전 들어서자 마을 전체에 매캐한 냄새와 함께 희뿌연 연기가 가득했다. 물통을 짊어진 군인들은 연신 산을 오르내리며 잔불을 껐고 머리 위로는 대형 산불진화 헬기가 쉴 새 없이 야산에 물을 쏟아부었다.

 

 

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서자 양쪽으로 늘어선 집 곳곳에선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화마가 덮친 마을 곳곳은 폭격을 맞은 듯 쑥대밭이 됐다. 벽돌집은 무너진 채 까맣게 탔고 철골로 만든 집은 앙상하게 골조를 드러냈다. 집 안 곳곳에도 깨진 유리 파편이 튀고 그을음이 가득했다. 집 밖에는 까맣게 그을린 엘피지(LPG) 가스통이 나뒹굴었다. 산불로 집을 잃은 주민들은 미처 챙기지 못한 귀중품 등을 하나라도 더 찾기 위해 화재 현장 곳곳을 둘러보며 눈물을 흘렸다.

 

 

강릉 산불로 인근 성산초등학교로 대피한 주민들이 교실 바닥에 깔아 놓은 은박지 위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강릉 산불로 인근 성산초등학교로 대피한 주민들이 교실 바닥에 깔아 놓은 은박지 위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인근 성산초등학교로 대피한 주민 300여명은 교실 바닥에 깔아 놓은 은박지 위에서 조마조마하며 뜬눈으로 밤을 샜다. 대부분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이다.

주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대피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얘기하며 안부를 묻는 자식 등 지인들의 전화에 답하느라 분주했다.

산불이 어느 정도 진화됐다는 소식이 들리자 일부 주민은 밀린 잠을 청하기도 했다.

 

 

피곤한 표정의 박정균(88) 할머니는 “구순 가까이 살면서 이런 불은 처음이다. 아차하다 죽는 줄 알았다. 대피소에서 한뎃잠을 자려니 허리도 아프고 집은 괜찮은지 걱정”이라고 힘겹게 말했다.

 

 

강릉시는 집이 불에 타 갈 곳이 없어진 30가구 64명의 이재민을 위해 임시주거시설인 컨테이너를 제작해 보급할 계획이다. 또 생활에 필요한 세탁기와 텔레비전 등 가전제품도 지원할 참이다. 임상술 강릉시청 공보관은 “이전 사천 산불 때도 이재민들에게 임시주거시설로 컨테이너를 제작해 지원했다. 주민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조처하겠다”고 말했다.

 

 

강풍에 산불이 급속하게 번지면서 연기가 강풍을 타고 시내까지 확산되면서 성산면뿐 아니라 인근 지역의 주민들도 불안에 떨어야 했다. 한때 산불이 강릉교도소 담장까지 번지면서 재소자 분산 이감이 검토됐으며, 성산면 주민 2500여명에게 대피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바람과 함께 불길이 잦아들면서 재소자 이감 계획은 취소되고 대피령이 내려진 주민들도 대부분 집에 머물며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성산면과 이웃한 홍제동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정은미(42·여)씨는 “먼 산에서 연기가 나더니 주유소 뒤 야산까지 불이 옮겨 붙었다. 급한 마음에 1시간 정도 직접 수도호수를 꺼내 불을 껐다. 십년 감수했다”고 말했다.

 

 

강릉에서 발생한 산불로 집이 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다.
강릉에서 발생한 산불로 집이 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다.

 

큰 불길을 잡고 한숨을 돌린 강릉과 달리 삼척 도계읍 늑구리 주민들은 불안에 떨며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늑구리 주민 30여명은 산불이 계속 확산될 기미를 보이자 늑구1리 이장 집으로 긴급 대피했다.

 

늑구2리에 살고 있는 김세욱(70)씨는 “연기가 너무 많이 나고 바람도 강하게 불어 진화인력이 현장에 접근하기 힘들어 헬기에만 의존해 불을 끄고 있다. 한때 집 바로 뒤까지 불길이 번졌지만 겨우 막았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강용희(62·늑구1리)씨는 “아직도 불길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다고 해 마을 주민 모두가 불안해하고 있다. 대피 생활이 길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6일부터 이어진 산불로 진화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산림·소방인력의 피로감도 쌓이고 있다. 소기웅(55) 강원도소방본부 구조담당은 “몸은 고되고 날씨는 덥지만 상당수 소방관들이 어제께 낮부터 강릉 산불현장에 나와 밤새도록 불과의 사투를 벌였다. 이제는 강릉 현장이 정리돼 곧 삼척으로 넘어갈 예정이다. 잊을 만하면 동해안에서 대형 산불이 나 걱정”이라고 말했다. 동해안에선 지난 3월에도 강릉 옥계면에서 산불이 나 산림 75㏊가 잿더미가 됐다. 두 달 만에 또다시 대형 산불이 난 셈이다.

 

강원도 영동지역에선 1996년 고성과 1998년 강릉 사천, 2004년 속초·강릉 등 대형 산불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05년 4월에는 양양에서 산불이 나 천년고찰 낙산사가 한순간에 불에 탔다.

 

이흥교 강원도소방본부장은 “강원도는 면적의 82%가 산림으로 둘러싸이고 산세가 험해 한번 불이 나면 헬기 말고는 진화인력 접근이 어려워 대형 산불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영동지역은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림이 많고 봄철 건조한 날씨에 강풍이 자주 불어 진화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강릉/박수혁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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