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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재판관은 아스팔트 위에 서있지 않다 / 박용현

  • LV 7 북극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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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3618
  • 2017.02.09 09:52

박용현
정치 에디터
 

 

 

탄핵심판 시점의 불확실성이 계속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22일까지 증인신문을 연장하면서 2월 선고는 물 건너가게 됐다. 재판 지연에 답답함을 느끼는 이들이 많을 테지만, 이제까지는 ‘사법적 인내’의 과정이라고 본다.

우리가 지키려는 민주주의는 무도한 죄인에게도 재판받을 권리, 변호받을 권리를 보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절차적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이지, 재판관의 내면에 동정을 키우는 시간일 순 없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재판관은 공손하게 들은 뒤 냉철하게 판단한다. 

 

 

한 법관은 사법적 인내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재판 당사자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인내심을 잃게 되는 경우는 재판 당사자보다 그 변호인들 탓일 때가 더 많다.

특히 변호인들이 재판 준비가 안 돼 있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있을 때가 그렇다. 

”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의 행태가 딱 그렇다. 사건의 본질과 상관없는 ‘내연관계’ ‘호스트바’ 운운하며 법정을 막장으로 끌고 가거나, 증인에게 중복 질문을 하다 재판관으로부터 “답변을 잘 듣고 물으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심은 오로지 재판 지연에 있는 듯한 어깃장 전술에 재판관들의 인내심도 많이 상했을 법하다. 

 

 

더 나아가 이런 시나리오도 들려온다. 증인신문이 끝나면 최종 변론만 남게 되는데, 이때 박 대통령이 직접 출석해 진술하겠다면서 준비할 시간을 달라고 요구할 것이란 얘기다.

이렇게 이정미 재판관의 임기 종료일인 3월13일만 넘기면 후임 재판관 임명절차 등으로 탄핵 재판은 몇 달을 끌 수도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에게 최후 진술 준비 시간은 더 필요하지 않다.

이미 무슨 인터넷방송에 나와 한 시간이나 조목조목 자신의 입장을 말하지 않았나.

언제든 헌재가 정해주는 날짜에 나와 마음껏 진술하면 그만이다. 

 

 

박 대통령 쪽이 앞으로 더 재판 진행을 훼방놓는다면 사법적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동안의 행태만 놓고 봐도, 일반 시민이 받는 재판에서는 (승소를 포기한 사람이 아닌 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권력을 남용한 또 하나의 ‘갑질’이요 ‘사법 농단’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절차적 혼돈 속에 헌재의 냉철함마저 흔들리는 게 아니냐는 불안도 고개를 든다.

헌법재판은 다른 재판보다 정치적 성격이 강한 게 사실이다.

보수 결집이니 태극기 집회니 하는 법정 밖 기류에 영향을 받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많은 나라에서 헌법재판을 정치인이 아닌 법률가, 특히 법관에게 맡긴 이유가 있다.

“그들은 특별한 훈련과 선발 과정을 거쳐, 민주주의의 근본 원칙들에 대해 심사숙고할 능력을 갖췄기 때문”(톰 긴즈버그 <민주화된 국가들의 헌법재판>)이다.  

헌법이라는 추상성 높은 규범을 해석할 때 재판관의 사상과 신념이 투영될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법률가로서의 판단’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러니 헌재 재판관들이 ‘아스팔트 보수’와 같은 부류일 수는 없다.

정치적 계산에 따라 입장을 요리조리 바꾸는 얄팍한 정치인과도 같을 수 없다. 조작·음모설 따위 궤변에 넘어갈 수준의 지적 능력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헌재는 선출된 권력이 아니면서도 결정 하나로 수천만의 삶을 바꿔놓는다. 실로 막대한 권한을 위임받았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지혜와 위엄을 갖춰야 한다.  

헌재가 끌려다닌다느니 누구 눈치를 본다느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 것 자체가 치욕이다.

이를 불식하기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향후 재판의 로드맵을 분명히 밝혀 절차적 혼돈부터 제거하는 일이다.

사법적 인내를 거두고 위엄을 세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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