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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화장실 휴지만도 못한 소모품인가요

  • LV 5 북극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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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9.03 12:01

김포공항 청소 노동자 손경희 

 

김포공항 안에는 손경희 공공비정규직노조 서경지부 강서지회장과 마주 앉아 조용히 얘기 나눌 공간조차 찾기 힘들었다. 손경희 지회장이 김포공항 1층 화장실 청소노동자 휴게공간(여성 화장실 한 칸)에 앉아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김포공항 안에는 손경희 공공비정규직노조 서경지부 강서지회장과 마주 앉아 조용히 얘기 나눌 공간조차 찾기 힘들었다. 손경희 지회장이 김포공항 1층 화장실 청소노동자 휴게공간(여성 화장실 한 칸)에 앉아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와! 변기 옆에 수족관이 있어!”

 

엄마 손을 잡고 따라온 꼬마가 환호성을 치며 폴짝폴짝 화장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김포공항 국내선 청사의 화장실은 근사하다. 대리석 바닥과 반짝이는 반사타일, 티브이(TV) 모니터와 엘이디(LED) 전광판, 가족화장실엔 인조해파리가 떠다니는 수족관이 있고 파스텔톤 마감재가 고급스런 조명 아래 빛난다.  

꼬마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청소용구를 양손에 든 환경미화원이 잰걸음으로 들어가 이곳저곳을 쓸고 닦았다. 평상시 입는 유니폼 대신 “정부지침 준수하라”는 글귀가 새겨진 빨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지난달 23일, 그를 만나기로 한 국내선 청사 3번 게이트 앞은 연신 캐리어를 끌고 드나드는 사람들로 부산했다.

휴가철이 지났는데도 공항청사는 붐볐다.

 요즘엔 비수기와 성수기가 따로 없을 정도로 제주여행객이 많아져서 하루 7만여명의 인파가 이곳을 거쳐 간다고 했다. 들뜬 표정의 여행객들 사이에, 머리를 삭발한 그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청소노동자가 입은 것과 똑같은 빨간 티셔츠가 아니었다면, 못 보고 지나칠 뻔했다. 사진으로 볼 때보다 여리고 작은 체구였다.  

 

공공비정규직노조 서경지부 손경희(51) 강서지회장은 김포공항 청소노동자다.  

지난 3월3일, 한국공항공사 용역업체 가운데 처음으로 노조를 설립했고 8월12일 노사간 대화를 요구하며 조합원들 앞에서 삭발을 했다.

“기자님들 오시게 하려고 머리를 밀었다”고 했다. 삭발식을 통해서야 처음으로 언론을 통해 알려진 김포공항 청소노동자들의 현실은 충격적이었다. 30년을 근무해도 최저시급 6030원, 낙하산 인사로 내려온 이들의 횡포와 불법적인 노무관리, 술 접대 강요와 노골적인 성추행, 욕설과 막말과 인신모독….  

 

세련된 인테리어로 치장된 김포공항 청사의 이면에는, 빗자루로 쓸어낼 수도 없는 쓰레기들이 도처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휘황한 조명의 가설무대 뒤편에 펼쳐진 전혀 딴판의 세상. 어쩜 우리 삶의 실제 무대는 얄팍한 베니어판으로 포장된 가설무대 위가 아니라, 무대 뒤에서 땀 흘리는 사람들의 고달픈 노동 현장인지도 모른다.

 

 

순댓국집 문 닫고 시작한 청소 용역직 

 

 

“한국공항공사는 나눔의 경영을 실천하고,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더욱 더 매진하여… 더 아름답고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항상 노력하겠습니다.”(성일환 한국공항공사 사장 인사말. 공항공사 누리집 중에서)

 

한국공항공사는 김포, 김해, 제주 등 전국 14개 공항을 통합 관리하는 공기업이다.

 

세계 항공업계 평가기관이 실시하는 공항 운영 효율성 분야에서 5회 연속 1위, 공항 서비스 평가에서 6년 연속 1위를 했다.

 

 한국공항공사의 사회공헌 경영이념은 “사랑과 나눔의 실천을 통해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국민기업 실현”이고, 핵심 사업영역의 하나인 ‘사회복지’ 분야에서는 “사회적인 약자와 소외계층이 역경을 극복하여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목표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김포공항을 하루 종일 쓸고 닦고 관리하는 청소노동자에게 공항공사의 경영이념은 번드르르한 화장실 바닥에 널브러진 휴지 조각만도 못하다.  

 

 

김포공항 안에는 손경희 지회장과 마주 앉아 조용히 얘기 나눌 공간조차 찾기 힘들었다.

 

평소 청소노동자는 남의 눈에 띄면 안 되는 존재다. 휴식시간에 커피 한잔을 마시거나 아이스크림을 먹는 행위조차도 시말서감이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가림막이 쳐진 청사 리모델링 공사판 안쪽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8월26일로 예정된 전면파업을 앞두고 상당히 긴장한 모습일 줄 알았는데 손경희는 의외로 차분하고 여유로웠다.  

 

 

-어젯밤 갑자기 인터뷰를 취소하고 싶다고 연락 주셔서 당황했습니다. 많이 부담스러우셨어요? 

 

 

 

“현장 상황을 알리는 건 좋은데, 저 개인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는 게 적절한가 싶었어요. 제가 무슨 명예를 바라고 특별히 개인적으로 조명받을 만큼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우려하시는 바는 잘 알겠습니다만, 전 ‘사람’ 얘기를 하고 싶어요. 왜 이런 일에 나서게 되셨는지, 파업을 앞두고 있는데 두렵진 않으신지…. 

 

 

“지금 심정은… (공항공사 쪽에서) 대화에 나서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에요. 꼭 파업이 목적은 아니잖아요. 우리 얘기 좀 들어달라고 이렇게 표현을 하는 거잖아요? 워낙 조합원들이 하늘을 뚫을 기세로, 이번에 제대로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뭉쳐 있기 때문에 특별히 두려운 건 없어요.”

 

 

-이전에 노조활동이나 노동운동을 해보신 경험은 있나요? 

 

 

“아뇨. 전 모든 게 처음이에요.(옅은 웃음) 노조도 처음, 삭발도 처음, 파업도 처음….” 

 

 

-이전에 일반 시민 입장에서 다른 노조가 파업하고 농성하는 것, 뉴스로라도 보셨을 것 아니에요?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전혀 관심 없었죠.” 

 

 

-하하하, 관심 없었어요?  

 

 

“네. 제가 여기 들어오기 전까진 자영업을 하던 입장이라서 노조고 뭐고 모르고 지냈어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죠. 요즘엔 사람들이 머리띠 두르는 장면만 봐도 눈물이 나요.

 

사드 문제나 다른 노조들 문제도 그렇고요.(눈물 글썽)” 

 

 

손경희는 전남 담양 사람이다. 3남1녀 중 생활력 강한 둘째 딸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광주의 대림혼다 대리점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하다가 서울로 올라와 24살부터 자영업을 시작했다.  

 

커피숍도 해보고 식당도 했는데 김포공항 일을 하기 전엔 부근 가양동에서 순댓국 체인점을 했다. 장사가 될 만하면 주변에 비슷비슷한 가게들이 들어서고 더 큰 체인점이 들어와 시장을 잠식했다.

영세 자영업으로 버티는 건 날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이참에 “사람에 시달리지 않고 정직하게 몸 쓰는 일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마침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이 김포공항에 취업을 한다고 해서 그 소개로 들어왔다가 청소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노동 강도는 세지만 손님들 비위 맞추느라 신경쓸 일은 없으니 몸만 좀 고생하면 되려니” 했다.  

 

 

-근데 막상 들어와 보니까…. 

 

 

“생각도 못했죠. 대한민국 공공기관이 이렇게 썩어빠진 줄은…. 아주 뿌리부터 썩은 걸, 그땐 몰랐어요.”  

 

 

3남1녀 중 생활력 강한 둘째딸
서울 올라와 24살부터 자영업
영세자영업자로 버티기 힘들어
‘정직하게 몸쓰는 일 하자’ 생각
“뿌리부터 썩은 줄 그땐 몰랐다”
 

 

계약은 지엔지라는 용역업체와
수주 따는 회사만 3년마다 교체
본사 퇴직 뒤 몇년 더 벌다 가는
본부장만 언제나 그대로일 뿐
용역업체 23곳, 비정규직 3600명 

 

 

“노동 3권, 우리 인권을 주장하는 거잖아요. 진짜로 국가적인 창피는, 우리를 노예로 써먹고 제대로 임금을 안 주는 것 아닌가요? 공공기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게 더 부끄러운 일이죠.” 손경희 지회장은 훗날 오늘을 돌아보면 “‘세상에 태어나 가장 정의로운 일 한 번 하고 간다’고 생각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노동 3권, 우리 인권을 주장하는 거잖아요. 진짜로 국가적인 창피는, 우리를 노예로 써먹고 제대로 임금을 안 주는 것 아닌가요? 공공기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게 더 부끄러운 일이죠.” 손경희 지회장은 훗날 오늘을 돌아보면 “‘세상에 태어나 가장 정의로운 일 한 번 하고 간다’고 생각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유령처럼 왔다 가는 용역업체 

 

 

-자영업자로 노조에 관심 없이 살던 분이 비정규직노조가 있다는 건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몇 년 전부터 비정규직노조 사무국장이란 분이 ‘환경개선, 처우개선 해야 하지 않냐?’고 꾸준히 명함을 돌리고 다녔는데,

 

그땐 ‘난 이런 거 못해요’ 하면서 전화 와도 안 받고 그랬어요.(웃음)” 

 

곁에 있던 정진희 사무국장(공공비정규직노조 서경지부 사무국장)이 머쓱한 표정으로 짧은 머리를 긁적이며 시선을 피했다.  

그녀도 지난 삭발식 때 손경희 지회장을 따라 머리를 밀었다.  

 

 

-근데 어떻게 시작하신 거예요?  

 

 

“작년 12월에 뜬금없이 공항공사 고객서비스팀에서 담당자들이 내려왔어요. 당시 본부장이 커피포트랑 일회용 믹스커피를 가져와서 타주겠다는 거예요.

우리는 황송하죠. 이런 일이 다 있나! 더군다나 와서 하시는 말씀이 ‘미화원분들이 제일 고생 많았다. 내년 임금인상은 최고로 많이 될 거다.’ 그러는 거예요.” 

 

 

-자기들이 먼저 임금인상을 해주겠다고요? 

 

 

“네네. 용역회사 중에 최고로 오를 거라고. ‘요즘 청사 리모델링 공사 하는데 여사님들도 햇빛 들어오는 곳에서 쉬셔야죠’ 하면서… 그 얘기 듣고 박수도 쳤어요.

들뜬 마음으로 1월달 월급봉투만 기다렸죠. 근데 딱 받아보니까 기도 안 차는 거예요. 똑같이 최저임금이더라고요.

우릴 우롱하는 건가. 그래서 10여명이 그때 왔던 공항공사 담당자들한테 연락을 했는데, 완전 무시하고 전화도 안 받더라고요.

그때 같이 나선 사람 중의 하나가 비정규직노조 사무국장 명함을 안 버리고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찾아가 의논하니까 ‘몇 분만 이러면 잘립니다.

여러 사람이 목소릴 합쳐야 합니다’ 하더라고요. 정신이 번쩍 들었죠.” 

 

2월22일 7명이 먼저 조합에 가입하고 이후 3월3일 103명이 되었을 때 정식으로 노조지회 설립을 선포했다. 지금은 사쪽의 종용으로 중간에 탈퇴한 반장급을 제외하고 120명이 노조에 가입해 있다.

 

 

-노조지회장으로 잡혀간다든가, 해고되면 어쩌나 걱정되진 않으세요? 지지부진 장기화될지도 모르고요. 

 

 

“지지부진 장기화될 수도 있겠죠. 그런데 뭐 지금 당장 모든 걸 내놓으라는 거나 모든 걸 다 바꿔달라는 것도 아녜요. 우리의 진정한 바람은 우릴 사람으로 대우하고 대화 상대로 인정해 달라는 것뿐이라고요.” 

 

 

-용역회사 직원들 문제엔 관여하지 않겠다는 게 지금 공항공사 입장이죠? 

 

“자기 자식이 아니라는 거죠. 근데 자식 맞잖아요. 6년 연속 서비스 평가 1위 자리를 했다고 작년엔 조그만 선물 하나씩 주더라고요.  

우리한테 바디로션 손바닥 반토막만한 거 돌리면서 그 안에 편지를 끼워줬는데 ‘사랑하는 우리 공항 가족 여러분. 여러분의 노고 덕분에 서비스 평가 1위를 하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썼어요. 필요할 땐 ‘가족’이고 곤란하면 ‘남의 직원’이라는 건 이중성 아닙니까? 내가 오죽하면 그 카드를 안 버리고 챙겨두었겠어요.” 

 

 

-그래도 여하튼 고용계약은, 지엔지(GnG)라는 용역업체랑 한 게 맞잖아요? 지엔지는 어떤 회삽니까? 

 

“알 수가 없죠.  

 

그동안 알 필요도 없었고요. 본사는 대전에 있고 이 현장엔 잘 올라와 보지도 않아요. 우리하고는 얼굴도 보기 힘들어요. 예전 용역회사들도 마찬가지였고요.” 

 

 

-예전 용역회사요? 계약하는 업체가 자주 바뀝니까? 

 

 

“이해하기 힘드실 텐데, 여기서 일하는 인력은 그대로 있고 매번 입찰해서 수주 따내는 회사는 3년 단위로 바뀌어요. 회사는 바뀌는데, 본부장은 그대로 있는 거예요.” 

 

 

-그 본부장은 어디 소속이죠? 

 

 

“공항공사에서 만든 ‘특수과업지시서’라는 게 있는데 ‘용역업체 본부장은 공항공사 10년 이상 재직자여야 한다’는 조항이 있어요.” 

 

 

-말하자면 하청을 주는 공항공사가 ‘너네, 우리 사람 써라. 그래야 용역 준다' 이런단 말이에요? 

 

 

“그런 거죠. 공항공사는 정년이 60살인데 용역업체는 65살이니까 본사 퇴직하고 여기 와서 몇 년 벌다 가는 거예요. 그래서 (용역업체가 어디든) 본부장 체제로 가는 거고요. 실제로 공항공사의 고객서비스팀에서 지시를 받아요. 이런 식으로 공항공사와 계약한 용역업체가 23개 회사, 3600여명의 비정규직이 있습니다.” 

 

 

-정상적인 구조라고 보긴 어렵군요. 그럼 업무지시는 어떻게 받아요? 

 

 

“업무지시고 뭐고, 그냥 공항공사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지적을 하면, 여기 본부장 아래 소장, 반장 이런 사람들이 그 지시에 따라 우리한테 일을 시키죠. 용역회사는 유령처럼 왔다가 유령처럼 사라지면 그뿐이에요.” 

 

 

-공항공사에는 노조가 없어요? 

 

 

“있어요. 정규직 노조.” 

 

 

-같이 연대하거나 지원해주는 건 없나요? 

 

 

“전혀 없어요. 자기들 밥그릇 챙기기 바쁘죠. 본인들은 성과연봉제에 반대하면서 우리 문제엔 관심을 보이지 않아요. 그래도 개별적으론 우리 응원해주는 분들도 있어요. 공사 직원 중에서 비타민 박스를 갖고 와선 ‘너무 몰랐다. 부끄럽다’ 하는 분도 계시고요.” 

 

 

-그럴 땐 힘이 나겠어요.

 

 

“고맙죠. 지나가던 시민들도 ‘꼭 이기시라’면서 음료수 사다 주고 가는 분도 있어요. 진짜 감사함을 많이 느낍니다.” 

 

 

낙하산 아래 낙하산, 맨 아래 청소노동자 

 

 

-공사와 용역업체 간에도 낙하산 인사가 있지만, 공사 사장 자리도 정부의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경우도 많아서, 자율적 타결이 쉽지 않을 수 있겠어요. 

 

 

“박근혜 정부 들어서면서 제일 인상 깊었던 게 낙하산 인사 근절한다는 약속이었는데, 실제론 용산참사 때 경찰청장이었던 김석기씨가 공항공사 사장으로 왔죠. 그때에도 용산 유가족들이 와서 엄청 반대시위 하고 했지만 결국엔 밀고 들어오더라고요.” 

 

 

-그러곤 20대 국회의원으로 가셨죠. 신임 공사 사장은 어떻습니까? 

 

 

“지금 성일환 사장님도 군 출신이잖아요. 여기는 고객을 상대로 영업하는 곳인데, 서비스 질을 어떻게 높일지보다 보안검사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아요. 보안검색만 강화하면 될까요? 어떻게 보면 우리가 고객을 맞는 최전방에 있잖아요. 근데 노동량이 어마어마해서 퇴근할 때면 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는 사람도 많아요. 근데 안 웃으면 안 웃는다고 잘라요.”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고요? 

 

 

“그럼요. 1년 계약에 수습 기간만 3개월인데 작년에도 수습 5명이 잘렸어요. 저도 작년에 인사성이 없다고 호되게 질책당했어요.” 

 

 

-누구한테 인사를 안 했다고요? 

 

 

“본부장이요.” 

 

 

-고객도 아니고 본부장? 

 

 

“우리가 옷 갈아입는 대기실이 청사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어요. 11시간 일하면서 30분 쉬는 동안 거기 왔다 갔다 하면 시간 다 쓰잖아요.

그래서 화장실 한쪽 물품창고에 쭈그리고 앉아 쉬고 있는데 부르더라고요. ‘아까 본부장님 지나가는 거 못 봤어?’ 하면서. 아니, 7만명이 오가는 북새통에서 누굴 쳐다봐요. 청소에만 집중해도 이 넓은 구역 일을 다 할까 말까 한데. 본부장이 여기선 절대적인 권력자고 그 밑의 소장도 우릴 감시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어요.” 

 

 

-근무연수가 아무리 오래된 청소노동자도 최저시급만 받아왔다고 하는데, 공사 쪽 주장은 달라요. 공항공사 쪽에서는 “김포공항 미화원의 월 급여는 205만원으로 국내 최고 수준이며 고용승계율도 100%로 완전 재고용되고 있다”고 반박하는데요.  

 

 

“한 달에 209시간 일하면 기본급으로 126만2천원을 받아 가요. 시간 수대로 나눠보세요. 최저시급 6030원으로 딱 떨어져요. 1987년에 입사한 분이나 갓 입사한 사람이나 모두가 똑같아요. 최저시급.” 

 

 

-지금 조합원들은 청소와 카트 수거를 하시는 분들인데, 연령대도 50대 이상이 많으시죠? 그런 분들한테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이나 성추행이 빈번하다는 것도 제겐 큰 충격이었어요. 

 

 

“툭하면 ‘보따리 싸서 가!’ ‘그러려면 대학 가라’ 하고, 어떤 이의제기도 못 하게 해요.

간식이라도 먹다가 들키면 ‘뭐 처먹냐?’고 하고, 화장실 물품창고에 간이의자 하나 놓고 남들 용변 보는 소리 들으면서 간식 먹어야 했다고, 시정해달라고 이번에 사진을 공개했어요.

 

그랬더니 거기 있는 의자, 선풍기를 싹 빼갔어요.

 ‘여기가 무슨 쉬는 장소인 줄 아느냐?’면서요. 쉬는 곳을 먼저 마련해놓고 그러는 것도 아니고. 화장실 휴지나 물건이 사람보다 더 중요한 거예요.

물건은 그 자리에 있잖아요. 인간부터 빼는 거예요. 화장실 비품만도 못한 소모품이죠, 인간이.” 

 

 

7만명 오가는 북새통 청소하는데
본부장 인사 안했다며 호된 질책
30년 된 사람, 갓 입사한 사람도
최저시급 6030원 모두가 똑같아
“남들 용변 소리 들으며 간식 먹어”
 

 

당장 정규직 전환 바라지도 않아
“대화 상대 인정해달라는 것뿐”
후배들, 젊은이들 앞길 달린 문제
세월 흘렀을 때 ‘나 이런 일 했다’
떳떳하게 말할 수 있었으면… 

 

 

 

손경희 공공비정규직노조 서경지부 강서지회장이 이진순씨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손경희 공공비정규직노조 서경지부 강서지회장이 이진순씨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그런데도 왜 그만두지 않았냐고요? 

 

 

-그런 상황에서 상습적인 성추행도 이뤄진 거군요. 나이 드신 어머니들한테 술 접대를 강요하고 가슴에 멍이 들도록 주무르고, 강제로 키스를 했다는 소식에 경악했습니다. 이런 사실들이 널리 보도된 것에 대해서, 피해자들은 어떻게 여기세요?

 

 

“(잠시 침묵) 불편하죠. 그만 얘기하고 싶죠. 창피하다고, 꼭 그걸 드러내서 주의를 끌어야 하냐는 분도 있었어요. 하지만

 

‘계속 숨기고 당하고 살 거냐? 용기를 내서 세상에 떠들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어요. 오랫동안 우리끼리도 쉬쉬해왔는데, 그 일로 자살 시도까지 한 분도 있었다는 걸 이번에 알았어요. 드러내지 않으면 도려낼 수 없잖아요. 그래서 저도… 제 얘길 꺼냈던 거고요.”

 

 

담담하게 이야기하던 손경희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려왔다. 그도 성추행 피해자다. 강제로 무릎에 앉혀진 채 키스를 당했단 얘길 공개적으로 털어놓기가 그로서도 무척 망설여졌을 것이다.

 

 

-힘드셨겠어요. 

 

 

“다신 그러지 말라 그랬죠. 더 이상은… (눈이 충혈되며) 미치겠는 거예요. 그 짓을 한 사람이 그 후에 회사에서 나가서 주차 파트에 가 있었는데, 어디서 부탁을 받았는지 우리가 노조 만들고 나서, 계속 조합원 탈퇴를 종용하더라고요.

그런 일이 몇 번 거듭되면서 나중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제가 머리 깎을 때 (성추행범의) 실명을 공개했어요. 그렇게 되니까 공항공사에서 소환해서 사표 내게 했어요.” 

 

 

 -이런 경우에도 공항공사에서 결정하는군요. 

 

 

“그러니까 공사와 관계가 없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지엔지는 절대 본부장 못 잘라요. 지엔지가 뭔 힘이 있어서 누구한테 인사권을 발동해요? 모든 인사권은 본부장이 쥐고 있고, 본부장의 인사는 공항공사가 갖고 있는데.”

 

 

-성추행으로 전임 본부장은 사표를 냈지만, 이건 형사처벌 받아야 할 사안 아닌가요? 공항공사 쪽도 “성희롱 문제는 피해 사실이 밝혀지지 않아 종결했다. 고발이나 수사 의뢰가 있으면 협조하겠다”고 했다는데. 

 

 

“본인이 고발하면 가능하겠죠. 그런데 피해자가 아들이 둘이에요. 남편도 계세요. 그런 일로 경찰서에 왔다 갔다 하고 싶겠냐고요? 그 일을 다시 떠올리고 진술한다는 것 자체가 큰 상처예요. 저도 지금… (눈물) 다시 그 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통스러워요.” 

 

 

잠시 나도 말을 멈췄다. 이 상황에서 뭘 더 물어보는 게 너무 가혹하단 생각도 들었다. 다음 질문을 위해 간신히 입은 뗐지만 내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작정하고 던지는 뻔뻔스런 질문이었다.

 

 

-죄송하지만… 이런 취급까지 받으면서 왜 이 직장을 계속 다니는지 이해가 안 간단 분들도 있어요.  

 

 

“월급은 제날짜에 나오잖아요. 여기서 그만둬도 다른 곳에서 빌딩 청소밖에 더 하겠어요? 혼자 일하거나 몇 명 안 되는 데서 근무하거나. 그런 데라고 더 나을 것도 없잖아요. 요즘 우리나라 뻔한데. 일하고 싶어도 일할 곳이 없어요.” 

 

 

“최고 대우를 받는” 곳이라 노동자들 재고용률이 높은 것이라는 공항공사 쪽의 논리는 얼마나 맹랑한가. 공항 밖을 나서도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겐 ‘뻔한 나라’인데. 

 

 

우릴 제발 사람으로 봐주세요 

 

 

-지금 노조에서 주장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구는 뭐예요? 

 

 

“딱 두 가지예요. 정부에서 발표한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에 따라서 이 업종 시중노임단가를 적용한 시급 8200원으로 맞춰달라는 것, 그리고 열악한 처우,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을 개선해 달라는 거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꿔달라는 것도 아니고요? 

 

 

“지금 당장 모든 걸 바꿔달라는 게 아녜요.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우리가 정말로 바라는 건, ‘대화’예요. 우릴 사람대접해서, 대화 상대로 인정해 달라고요.”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 하면서, “‘떼법문화’가 만연하면서 사회적 비용이 증가되고 대외경쟁력까지 실추되고 있다”고 지적했어요. 해외관광객들이나 바이어들이 출입하는 김포공항에서 파업을 벌이는 건, 국가적 망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얘기하고 싶으세요? 

 

 

“노동 3권, 우리 인권을 주장하는 거잖아요. 진짜로 국가적인 창피는, 우리를 노예로 써먹고 제대로 임금을 안 주는 것 아닌가요? 공공기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게 더 부끄러운 일이죠.” 

 

 

-조합원들을 지지하는 일반 시민들이 뭘 어떻게 도우면 힘이 되겠어요? 

 

 

“공항공사에 말을 넣어주세요. 홈페이지에 ‘고객의 소리’라고 있거든요. 진심 어린 말 한마디씩 적어주시면 그게 제일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고객서비스팀에 전화를 주셔도 좋고요.” 

 

 

-나중에 10년, 20년이 지나서 할머니가 돼서 오늘날을 다시 돌아본다면, 현재가 어떤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죽음을 앞두고 내 인생을 돌아볼 때, ‘세상에 태어나 가장 정의로운 일 한 번 하고 간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저 혼자만의 일이 아니잖아요. 지금은 나와 내 동료들의 처우개선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우리 후배들, 젊은이들 앞길이 달린 문제예요.

 

‘선배들이 어떻게 살았냐?’고 그들이 물으면, ‘나 이런 일 했다’고 나중에 떳떳하게 말하는 게 부끄럽지 않은, 후회스럽지 않은 삶이지 않을까.” 

 

 

26일 예정대로 파업에 들어간 김포공항 노동자들은 “노사대화를 위해 파업을 중단해 달라”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4시간 만에 업무에 복귀했다. 복귀 한 시간 뒤, 공항공사는 대화를 거부했다.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 대화해 달라”는 요구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아 손경희 지회장은 지난달 30일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녹취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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