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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ch괴담] 잔류사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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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5437
  • 2014.10.01 22:44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는 제비뽑기에 져서 미화 위원회에 들어갔다.
미화 위원은 아침 6시부터 미화 운동이라는 이름의 교내 청소에 동원되는 허울만 좋은 자리다.
위원회는 3개 조로 나뉘어, 각 조가 한 주에 이틀씩 청소를 맡게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촌스럽기 그지 없는 네이밍 센스지만, 나는 제 3 미화팀이었다.
1조는 월요일과 목요일, 2조는 화요일과 금요일.
그리고 우리 3팀은 수요일만 청소를 했다.
토요일엔 학교를 안 나가니까.

한 조는 각각 10명 정도로, 학년이나 성별은 모두 제각각이다.
어차피 아침에 청소하는 것 뿐이니 딱히 불만은 없었지만, 
그 중 같은 3학년에 다니는 어두운 이미지로 알려진 이이지마란 놈이 있었다.

키가 작아 언제나 교실에서 책만 읽고 있는 녀석이다.
나는 [우와, 재미없는 녀석이랑 한 조가 됐네.] 싶었다.
다른 조가 더 재미있어 보여 부럽기도 했다.

그리고 개학 후 첫 수요일, 6시에 모인 우리 3팀은, 선생님의 지시를 받아 청소를 시작했다.
교정의 쓰레기를 줍는 쪽이 있는가 하면, 신발장을 걸레로 닦는 녀석도 있다.
그렇게 다들 각각 흩어져서 맡은 청소구역을 열심히 치우고 있었다.

그 중 나는 이이지마와 둘이, 체육관을 기름걸레로 닦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7시부터는 아침 동아리 활동이 있기에, 그 전에 쓱싹 해치우라는 거였다.

결국 나는 말 한 번 섞은 적 없는 이이지마와 둘이서, 체육관을 걸레로 밀기 시작했다.

아침 댓바람의 체육관은 딱히 기분 나쁠 것도 없고, 그저 시원하기만 했다.
이 참에 이이지마랑 뭔 얘기라도 해볼까 싶기도 했지만, 그냥 걸레질이나 했다.
솔직히 어색해 죽을 것 같았다.

엄청나게 조용한 체육관에서 하나도 안 친한 남자 녀석 둘이 말 한마디 없이 아침부터 걸레질이라니, 
영 내키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등 뒤에서 끽끽하고 소리가 난다.
농구 시합 도중 농구화가 바닥에 쓸릴 때 나는 그 소리다.
나는 바로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다.

주변을 돌아보자 이이지마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담담하게 걸레질을 하고 있다.
기분 탓인가 싶었지만, 이번에는 저 멀리서 콩콩콩하고 소리가 난다.
공을 바닥에 튀기는 소리다.
그 쪽으로 시선을 돌려도 아무 것도 없다.

내가 두리번거리고 있자, 등 뒤에서 [너도 들었지?] 라고 말소리가 날아온다.
깜짝 놀라 뒤를 보자, 어느샌가 이이지마가 다가와 있었다.
[너도 들었지? 지금 그거.] 라며 싱글싱글 웃고 있다.
어두운 웃음이 기분 나쁘긴 했지만, 이이지마가 먼저 말을 걸은 건 좀 의외였다.
나는 [지금 그거 무슨 소리야?] 라고 물었다.

[잔류사념.]

이이지마는 기름걸레 자루에 턱을 괴고 대답했다.
[사람의 생각이 어느 장소에 머문다는 건 자주 있는 이야기잖아. 
생각해 봐. 예를 들면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가 생전 애용하던 의자엔 
왠지 아버지가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잖아. 이런 게 가장 흔한 잔류사념이야.]

나는 이이지마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유령 같은 거야?] 라고 물었다.

[그거야, 잔류사념이 원한이나 미련 같은 강렬한 거라면 자박령이 될 가능성도 있겠지. 하지만 그런 게 흔한 건 아니야.]
[그럼 뭐라는 건데?] 라며 나는 투덜거렸다.
[살아 있는 사람의 잔류사념이란 것도 있다구. 교장실에 있는 소파에는 앉기 좀 거북하지? 
그것도 일종의 잔류사념이야. 교장 선생님의 생각이 머물러 있다는거지.]

헤에, 하고 나는 대충 대답했다.
하지만 내심 기분 나쁜 소리를 하는 녀석이구나 싶었다.

[아마 농구부에 있는 녀석의 잔류사념이겠지. 뜨거운 느낌이 들어. 꽤 농구를 사랑하는 사람의 생령 같은 거 같아.]
아아, 하고 나는 대답했다.

나는 이이지마는 생긴 것 마냥 괴짜구나 하고 생각하며 걸레질을 마쳤다.
열심히 걸레질만 한 덕인지, 다 끝났는데도 6시 30분이었다.

이이지마와 둘이서 체육관에서 나가려는데, 또 등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끽끽.
[야, 근데 생령이 연습을 하고 있어. 이 사람 누군지는 몰라도 진짜 농구를 좋아하는 거 같아.] 라고 이이지마가 말했다.

그러더니 체육관의 무거운 문이 열렸다.
농구부 주장 우치노였다.
[이야, 너희 아침부터 청소하고 있냐? 제비뽑기 한 번 잘못해서 고생이 많구만!]

나는 [아침 연습치고는 좀 이르지 않냐? 7시부터잖아?] 라고 물었다.
우치노는 씩 웃고 대답했다.
[현 대회가 코 앞이라구. 나한텐 마지막 대회인데다, 올해는 왠지 잘 될 것만 같아.]

나와 이이지마는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이지마는 살짝 브이자를 그려보인다.

우치노에게 [힘내라.] 라고 말하고, 우리는 체육관을 나섰다.
그 후, 청소를 너무 빨리 끝내서 대충 한 거 아니냐고 선생님한테 살짝 혼났다.

결국 남은 30분 동안 교정에서 쓰레기를 줍게 되었다.
7시가 되어 슬슬 다들 등교하기 시작하고, 나와 이이지마도 서로의 교실로 돌아갔다.
이상한 아침이었다 싶었지만, 조금 마음이 따뜻해진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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