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아내·두 아들 미국 보내고 4년 동안 한 번도 못 만나
ㆍ실업급여로 용돈 보내 애틋
자식들의 외국유학 뒷바라지를 위해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던 50대 ‘기러기 아빠’가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인천 계양경찰서는 지난 8일 오후 9시43분쯤 인천 계양구 작전동의 한 빌라에서 이모씨(53)가 숨져 있는 것을 친구 김모씨(54)가 발견해 신고했다고 10일 밝혔다. 김씨는 “이씨가 20일 전 통화에서 ‘죽고 싶다’는 말을 한 데다 최근에는 휴대전화 전원까지 꺼져 있어 집에 가봤더니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가 숨진 방 안에는 번개탄이 피워진 흔적이 있고 탁자 위에는 가족들에게 남긴 유서가 있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의 시신이 숨진 지 2~3일 정도 지난 후에 발견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유서에서 “가족들 아이들아, 아이들 엄마, 그리고 형제분들 죄송합니다. 모든 분들에게 짐을 덜고자 이 길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두 아들을 끝까지 책임 못지어 미안하다. 아빠처럼 살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 정말로 숨막히는 세상이다. 아빠는 몸건강, 정신건강 모두 잃었다. 모든 분들께 죄송합니다”라고 썼다.
이씨는 2009년 고등학생이던 큰아들(21)과 중학생이던 둘째 아들, 그리고 이들을 현지에서 뒷바라지하도록 아내를 미국으로 보냈다. 미국에 아내의 남동생 등이 살고 있어서였다. 이씨의 아내는 남편에게도 미국행을 권했지만 아파트 관리소 전기기사로 일하던 그는 영어도 못한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이후 실직하자 실업급여를 자식들의 외국 유학비로 송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정적인 직장을 찾지 못하고 가족을 떠나보낸 외로움까지 겹치자 과음을 반복하다 지난해엔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이씨는 항공권 비용조차 마련하기가 쉽지 않아 지난 4년 동안 가족들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그런 형편 속에서 힘들게 미국행 비행기표를 끊어놓고는 막상 자식들 앞에 서기가 부끄럽다면서 미국행을 포기했다고 주변 사람들은 전했다. 이씨는 최근 일감이 많지 않은 탓에 실직을 반복하면서 자식들의 용돈 정도만 송금했고, 아이들의 학비와 미국 체재비는 미국에 있는 부인이 음식점 종업원 일 등을 하면서 부담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의 시신은 이날 부평의 한 화장장에서 한 줌의 재가 됐다. 장례식장 관계자는 “이씨의 친·인척만 참석해 장례를 치렀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유족들이 항공권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것 같다”며 “마지막까지 쓸쓸하게 생을 마무리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씨가 신병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하고 있다.
ㆍ실업급여로 용돈 보내 애틋
자식들의 외국유학 뒷바라지를 위해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던 50대 ‘기러기 아빠’가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인천 계양경찰서는 지난 8일 오후 9시43분쯤 인천 계양구 작전동의 한 빌라에서 이모씨(53)가 숨져 있는 것을 친구 김모씨(54)가 발견해 신고했다고 10일 밝혔다. 김씨는 “이씨가 20일 전 통화에서 ‘죽고 싶다’는 말을 한 데다 최근에는 휴대전화 전원까지 꺼져 있어 집에 가봤더니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가 숨진 방 안에는 번개탄이 피워진 흔적이 있고 탁자 위에는 가족들에게 남긴 유서가 있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의 시신이 숨진 지 2~3일 정도 지난 후에 발견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유서에서 “가족들 아이들아, 아이들 엄마, 그리고 형제분들 죄송합니다. 모든 분들에게 짐을 덜고자 이 길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두 아들을 끝까지 책임 못지어 미안하다. 아빠처럼 살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 정말로 숨막히는 세상이다. 아빠는 몸건강, 정신건강 모두 잃었다. 모든 분들께 죄송합니다”라고 썼다.
이씨는 2009년 고등학생이던 큰아들(21)과 중학생이던 둘째 아들, 그리고 이들을 현지에서 뒷바라지하도록 아내를 미국으로 보냈다. 미국에 아내의 남동생 등이 살고 있어서였다. 이씨의 아내는 남편에게도 미국행을 권했지만 아파트 관리소 전기기사로 일하던 그는 영어도 못한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이후 실직하자 실업급여를 자식들의 외국 유학비로 송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정적인 직장을 찾지 못하고 가족을 떠나보낸 외로움까지 겹치자 과음을 반복하다 지난해엔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이씨는 항공권 비용조차 마련하기가 쉽지 않아 지난 4년 동안 가족들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그런 형편 속에서 힘들게 미국행 비행기표를 끊어놓고는 막상 자식들 앞에 서기가 부끄럽다면서 미국행을 포기했다고 주변 사람들은 전했다. 이씨는 최근 일감이 많지 않은 탓에 실직을 반복하면서 자식들의 용돈 정도만 송금했고, 아이들의 학비와 미국 체재비는 미국에 있는 부인이 음식점 종업원 일 등을 하면서 부담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의 시신은 이날 부평의 한 화장장에서 한 줌의 재가 됐다. 장례식장 관계자는 “이씨의 친·인척만 참석해 장례를 치렀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유족들이 항공권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것 같다”며 “마지막까지 쓸쓸하게 생을 마무리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씨가 신병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