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자를 만나게 되었고 참 순수함과 솔직함에 전 너무 빠르게 반하게 되었습니다.
이여자랑 꼭 결혼까지 하고 싶다는 마음이 저의 가슴을 너무 두드렸습니다.
만남을 가질수록 그녀를 알아갔고 집안이 엄해서 귀가 시간이 다른사람들과 비교해서 엄청 빠르게 들어가야된다는것도 알게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만나서 술을 마실때나 놀때나 그시간을 지켜줄라고 많이 노력을 하였고 1년이라는 연예를 통해 우리는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연예를 계속 하던중 그녀가 심각한 목소리로 만나자고 해서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임신을 한것 같다고 그래서 같이 병원에 가보자고 했지만 이미 임신테스트기로 확인하였다고 하더군요
전 기분이 너무 좋았지만 한편으로 그녀의 나이가 20대라서
걸리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때 그녀는 20살이였고 너무도 나이도 어리고 집안도 엄했고
저의 사정또한 어의치 않았습니다.
그래선 저는 수술하자라고 의견을 내었고 그녀는 낳겠다고
의견을 내었습니다.
그래서 전 어찌할줄 몰라서 나에게 사정이 있다. 당분간
못날꺼같다 하지만 수술하면 같이 가줄께 라고 하였고
이런 결심을 하게된 동기는 아까도 말했듯이 그녀가 너무 어렸고
저는 너무 준비가 안되어있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그녀가 집에서 싸우고 짐 싸들고 나왔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우선 저는 어머니와 살고 있었기에 차분히 말슴드리고 그녀를 맞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도 두렵고 힘들었겠지만 열심히 적응하고 노력하는 그녀가 너무 고마워서
더욱더 일을 열심히 해서 정말 그녀와 잘 살아볼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정말 행복하게 살다가 갑자기 장모님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말을 하였고 너무 장모님한테 죄송하고 면목이 없지만
시간을 잡아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이 많았지만 장모님은 처음에는 무겁게 말슴을 하시다가
이렇게 된거 어쩌겠니 하시면서 저를 맞아 주셨습니다.
정말 그때는 너무나도 감사했었습니다.
그후 우리는 혼인신고를 하였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장모님을 만나고 난후 어느날 와이프가 심각하게 전화를 하고 우울한 표정으로 있길래 왜 그러냐 물었더니 내가 학교 다닐때 장학금 대출을 받았는대 그걸 처가집에서 아직 못갚고있다고 말을 하여 2000만원을 와이프한테 주면서
갚자고 하였습니다.
와이프도 시부모님과 사는게 긴장했는지 요리도 배울려고하고 정말 신혼분위기가 날정도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와이프의 산날이 다되어 우리 아들이가 태어났고 와이프는 몸조리때문에 처가집에 한달간 가 있었고 그후 다시 돌아와서 우리는
아들을 정말 열심히 키우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었지만 와이프는 몸에 안배었는지 아니면 모르는건지 청소를 거진 안했고 우리 아들 어릴떄 배냇저고리에
먼지가 많이 묻어있을 정도로... 이것도 저의어머니가 이야기 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어머니께 와이프는 5년간 시집살림을 하였고 그후 어머니께 말슴드리고 독립을 하여 조그만한
전세로 저의 가족은 셋만의 공간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전세였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돈을 더 벌어서 더 큰대로 이사를 해야지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근대 저의 생각과 너무나도 틀린 독립이였던것 같습니다.
저의 일은 가락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직업이였습니다.
밤공기도 차고 모든일이 다 그렇겠지만 육체노동이 심하고
정신도 바짝 차려야 했기에 정말 열심히 배우면서 손님을 많이
늘릴려고 하였고 내 평생 이렇게 열심히 살아본적이 있나 싶을정도로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와이프는 독립한 이사 첫날 그후 일주일까지만 청소를 하였고 그후엔 청소를 하는것을 아예 보질 못했고 설겆이도 산을 이룰정도로 쌓아놓고 그래... 애기보느라 그랬겠지하면서 전 설겇이도 하고 같이 청소하자고 말도 하면서 그려러니 했습니다.
그러던 도중 전 개인적으로 사정이 생겨서 일을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일을 그만두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전 너무 괴로운 상태였습니다.
저는 괴로움에 와이프는 고민중에 우리는 대출이란걸 받게
되었고 저희는 2년만에 7천만원에 빛을 지게 되었습니다.
서로일은 안하고 나가는돈은 많고 그래서 인지 참으로 괴로운
나날이였습니다.
와이프는 안되겠는지 일자리를 알아보고 일을 하게 되었고
그래도 저는 한푼이라도 벌어보겠다고 아프리카 BJ로 하루에 4-5시간씩 무과금 게임 방송으로 많은 돈은 아니였지만 조금이라도 벌었습니다.
육아는 제가 보게 되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된거 밖에서 힘들게 일하고 드러오는 와이프한테 신경쓰게 안할려고 우리 아들에게 맛난것도 해먹이고
청소도 자주하고 설겆이 빨래 등등 깔끔히 하면서 지냈습니다.
제가 어릴떄 아버지가 저의 발목을 잡아주면서 인몸일으키기를
자주 시킨적이 있습니다.
저는 어린나이에 살도 많이 안쪗고 어린나이에 배에 복근이 나올
정도로 너무나도 건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게 생각이 나서 우리아들에게 하루에 한개씩 늘려가면서
저도 우리아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같이 운동을 하며 행복한
삶을 지내고있었습니다.
우리 아들은 뱃살도 안나왔고 정말 딱 적당한 몸매로
운동이란것을 해서 인지 성격도 활발하고 운동도 잘했습니다.
그러던중 와이프는 1년만에 일을 그만 두어야겠다고 하여서 그럼 알겠다 내가 다시 시장으로 나가서 일할께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나마 다행인건 몇프로 안되는 7000만원의 빛이라 조금식 갚아 나가면 되겠지 하면서 전 다시 열심히 일을 시작 해보았습니다.
저는 3년이란 시간을 육아 키우는대 집중을 하다가 다시 시장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육아를 와이프가 보고 저는 다시 시장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처갓집에 일주일에 한번씩 갈정도로 와이프랑 아들이랑 자주 갔으며 결혼식이라는 주제로 생전 장인어르신께서 말슴을 많이 꺼내셧습니다.
처갓집은 아직도 빛이 많아서 돈애기를 꺼낼수 없었고 상견례를
준비해볼까도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장인어르신은 저만 믿는다고 많은 부담을 주셨고 저도 어떻게든 해볼려고 했지만 결혼이란... 저희만 한다고 해서 될일이 아닌걸...
두 집안의 부모님의 의견이 너무나도 틀렸고 ... 저는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정도로 그냥 열심히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뿐이였습니다.
장인어른은 10가지의 병세가 있으셧고 심할정도로 몸이 많이 안좋아서 119구조대에 자주 실려갈 정도로 당뇨, 심장도 안좋으시구 아무튼 많이 안좋으셧습니다.
갑자기 와이프가 처갓집에 다녀왔고 이거 장인어르신 병원비인대
이걸로 결혼식비에 보태라고 하더군여 근대 제가 이건 아니잖아 라고 말을 하니 한참을 고민한 와이프도 말하길 그건 맞지... 라고 말하더군여.
그래서 저희는 노력은 했으나 장인어르신이 생전에는 결혼식을 못올리는 불효를 저질렸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갔고....
설마 설마 했는대 역시더군요...
시간과 날이갈수록 집은 드러워져 갔고 아들은 비만으로 변해 갔으며 와이프 또한 살이 많이 쪄서 신경질만 늘어갔습니다.
머... 일을 그만두고 그럴수도 있지라고 생각했지만 이것또한 저의 착각이였습니다.
10년을 살았지만 김장을 담근것도 2회에 불가 하고 거진 시장에서 완성품 반찬을 사서 밥을 차리는게 다반사였고 유통기간이 지난지도 모르고 버리지 않는 음식을 먹을때도 있었습니다.
전 위에 글처럼 바뀌고나서 육아에 모든걸 제가 했듯 와이프한테 맞겼지만 점점 하나씩 저의 손이 뻗이게 되었습니다.
와이프한테 말을 하지 않으면 전혀 움직이질 않았고 힘들게 일을 하고 드러온 제가 움직여야 움직였고 점점 갈수록 저는 저도모르게 짜증이란걸 내게 되었고 서로 잦은 다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일하면서 일당이란걸 받는대 10만원을 벌면 저는 그에 반 5만원 20만원이면 10만원씩 와이프한테 주었습니다.
저는 우리아들 학원비용, 전기셋, 수돗세, 통신비, 그외적으로 집안에 드러가는 비용을 맞게 되었고 와이프는 생활비목적으로 음식 부분 아들학교 부분만 맞게 되었습니다.
저도 방관한게 많고 일핑계를 아들이랑 못놀아준게 많고 가정에 소홀한건 많습니다.
저는 초심을 어느순간부터 잃게 되었습니다.
집에 들어가기가 싫을 정도로 술을 마셔댔고 잔소리를 하기 싫을정도로 정이란게 떨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잦은 말다툼을 하였습니다.
계속 되는 잔소리에 전혀 달라지는 모습이 보이질 않자 저는
마음속엔 안되겠다...라는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어
자기야 우리 이혼하자라는 말을 꺼냈고 와이프는 울면서 왜그러냐
싫다 싫어 싫다고 말을 계속 했습니다.
진짜 이혼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냥 먼가 심한 충격을 주어야 결혼생활이 유지 되지 않을까 해서...
말을 하고도 너무 미안했었습니다....
그래... 내가 선택한 여자이고 우리 아들도 있는대 내가 이러면 안되지 하고 정신을 다 잡아보려고 해도 어느 충격에도
와이프는 변화하는 모습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어느날 어머니께서 나이도 많으시고 일을 예전부터 많이 하셔서
그런지 구강풍 입이 돌아가고 다리에 힘이 없고 이런 풍을 맞으셧습니다.
어머니께서 저희 아들은 내가 돌볼태니 와이프한테 말해서 같이 시장나와서 일하는게 어떻겠냐고 말슴하셔서 저는 와이프한테 말을하니간...
싫다. 그냥 싫다. 라는 말만 계속 하였습니다.
어머니께서는 포기 안하시고 와이프를 설득해 보셧지만 와이프는 싫다는말과 동시에 나한테 짜증을 내면서 왜 이렇게 시장에 나오라는지 모르겠다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대 이 여자가 나랑 살고 있는 여자인지 아님.. 남인지 정말 저또한 이해가 안되는 상황이였습니다.
자기 말론 시장에 나가면 우리 아들은 어쩌고 자기가 꼭 키워야 된다고 어머니도 힘들고 머 등등등 이유를 대면서
회피하기만 하였습니다. 무조건 싫다는 말만 할뿐 같이 부부로써 시장일을 해볼려고 노력 조차도 안했습니다.
어쩔수 없이 시장일 행동은 제가 하더라도 곁에서 손님을 지켜봐주고 이런일을 하셔야기에 어머니께서는 아픈 몸을 무릎쓰고 시장일을 계속 나가시게 되었습니다...
일이 끝난뒤 저는 와이프한테 불만을 가지면 안되는대 하면서 참으면 참을수록 저의 모습이 점점 술의 의지를 했고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첨부터 이렇게 술을 마신건 아닙니다.
시장에 막 나가서는 모르는 삼촌들 형들과 친해질려고 술을 마신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주는 아니였습니다. 어쩌다가 가끔씩 마셧습니다.
일끝나고 힘든몸을 이끌고 집에들어와서 보이는 부분을 치우고 닦고 해도 점점 늘어나는 먼지들 세균들 너무나도 싫었고 저또한
방치했던것 같습니다. 정말 심하게 드러워지면 알아서 하겠지라고 하지만 이것조차도 저의 착각이였습니다.
우리 아들 정서때문에 어느정도 나이때까지 정서를 만들때 동안 와이프한테 일을 하지말라고 서로 이야기한건 맞습니다.
저의 허술함과 낙태된 모습에 와이프도 많이 힘들었지만 저또한
제 자신이 무너질 정도로 집이란곳은 드러가기 조차도 싫었고
술을 마시면서 그래도 우리 아들이 있는대 하면서 귀가를 했었습니다.
저는 처가집에 서운하게 안할려고 한달에 2-3회 찾아 뵙었고
돈도 10-20만원씩 드렸으며 장녀사위로써 최선을 다했습니다.
시장에서 일하던중 장인어른이 위급하시다고 전화를 받았고
일하던걸 어머니께 맡기고 빠르게 병원에 가보니 이미 장인어른은 돌아가신뒤였습니다.
장녀의 사위로 전 상주가 되었고 처음해보는 상주라 어떻게 할질 몰랐지만 그래도 와이프의 강릉쪽 친가에서 많이 알려주셔서
장례를 잘 치룰수 있었습니다.
상주 및 장녀사위로써 장인어른의 제사도 제가 다 차린건 아니지만 선수 제사를 진행하였고 제사를 지낼때마다 아버님 많이 힘듭니다. 그래도 열심히 살겠습니다라고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마음은 오래 못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와 와이프는 같이 살고는 있지만 점점 마음이 멀어졌고 다시 돌아갈수 없다는것도 서로가 느끼고 있었을꺼라고 생각합니다.
술을 먹다보니 제가 일을 나갈시간에 못일어 나서 와이프한테 몇시에 깨워달라고 부탁을 하였고 와이프는
제가 쉽게 안일어나니 전 그때 정말 정내미가 확떨어졌습니다.
발로 저의 머리를 차면서 저를 깨웠던겁니다.....
그러던중 와이프가 나 간호조무사 공부할래라고 하였고 저는 열심히하라고 돈도 더 많이 주고 곁에서 도와줬습니다.
하지만 와이프는 이 간호조무사를 딸려고 했던 동기가 저를 떠날려고 준비를 꾸미는것인지 추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와이프또한 저를 떠나기전부터 준비를 단단히 했는지 없는 사실을
고소장에 애기하고 변호사한테 없는 증거를 댄것 같습니다.
간호조무사를 공부하는동안 집안은 정말 보기 힘들정도로 비폐되었고 그냥 있어도 요리를 안하고 그러는대 이젠 머 될때로 되라는식으로 더욱더 낙후가 되었습니다.
와이프는시어머니한테는 막말을 하며 모르겟다. 싫다. 등등 어른이라고 생각해도 존대가 당연하거늘 막말을 하면서 시어머니를 무시했고 가정사는 말할껏도 없었습니다.
이번 추석에 와이프가 우리 이혼해라고 하더군요 추석을 따로 지내자고 이혼하자고 해서 그러면 우리 아들한테도 시간도 줄겸 집에서 추석을 같이 보내자라고 하였지만 와이프는 아니다 아들을 대리고 처가집 갈꺼다라고 화를 내면서 완강이 처가집으로 갈려고 했습니다.
전 그걸 말렸고 그렇게 실갱이끝에 저는 목상처를 와이프는 팔에 상처를 입었고 와이프는 제가 못가게 해서 화가 났는지 경찰에 신고를 하였습니다.
경찰은 집에와서 이야기를 다 듣고 별거 아니니 제 와이프한테 이런말을 하더군요 이렇게 된거 우선 이번 추석을 제말처럼
집에서 보내고 그러심이 좋을꺼 같다고 경찰은 이렇게 말하고 갈려던 찰나에 와이프는 경찰한테 할말이 있다고 하고 나가서는 저는 가정폭력범 및 아동학대로 신고를 하였습니다.
저는 경찰 조사를 받고 법원에서 서류로 무죄 선고 받았습니다.
추석이 지난후 정말 같은 집에 있지만 완전 남남처럼 살았고 이미 전에 많이 꾸며서 그런지 몰라도 법적으로 저를 신고도 하였고 접근금지도 신청하였다고 하더군요...
신고를 당한후에도 전 아들을 위해서 이혼이라는것을 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아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가정이 깨지면 안된다는걸을 알기에... 하지만 날이 가면 갈수록 가관이였습니다..
그래도 말도 하고 문자로 무슨말을 해도 알겠다 미안하다 너가 전부다 라고 해도 와이프는 짐정리해서 나갈 날짜를 알려준다고 일요일에 나간다고 하더군요 우리 시간점 가지자고 하는 말을 남기채...
시간좀 갖자는 말에 저는 와이프와 아들을 처가집으로 보낼수밖에 없었습니다.
그후 아들이가 보고싶지만 와이프가 화가 풀릴동안의 시간을 주고 싶었고 아들생일에 와이프한테 전화를 해서 어떻게 했음 좋겠어라고 물어보니 와이프는 저에게 그냥 전화해서 축하한다고 전해주라고 하더군여
그래서 전 시키는대로 전화만 하였고... 그후 2021년 저의 생일 11월 30일엔 전화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처갑집으로 간 와이프는 급속도로 빠르게 민사로 접근금지를 신청하고 소장으로 이혼소송도 하였더군요.
법원에서 접근금지 신청으로 전 아들한테 전화도 못하고 만나지도 못하였습니다.
형사 재판에서 무죄가 나왔기에 민사도 폭행 부분 아동학대부분은 무죄일꺼같지만...
다시 이 엮긴걸 풀어야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볍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제가 힘든 상황에서도 아들이 걱정되는건 사실
입니다.
조금만 서로가 노력하면 해결될수 있다는 마음이 아직도 강하게 작용하는것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아들은 힘들지 않을탠대...
와이프도 항상 애기했죠.. 아들이 무슨 죄냐고 우리가 이혼하면 우
리아들은...
와이프가 떠나가기전 제일 친한 여사친구가 우리 아들을 보고싶다고 하길래
와이프한테 이야기 하고 만난적이 있습니다.
그날 친구는 저에게 이런말을 했습니다.
우리아들이 내 친구한테 이런말을 했더군요..
옷가지를 땡기면서 이모.. 도와주세요.. 아버지랑 울 엄마랑 살게 도와주세요..라고
너무 가슴이 찢어질듯 아팠습니다.
저는 매일 마다 아들 걱정으로 밤잠을 설칩니다...
아내가 떠나고난후 ...
냉장실은 돌아갔지만 냉장고가 안돌아가고 있다는걸 저는 알고 기사를 불러서 고치니 1-2달은 안돌아 간것같다고 애기 하더군요지금까지 우리 가족은 썩고있는 음식을 먹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냉장고이 망가졌다는 말만 했어도 기사를 불러서 수리를 했었을탠대 왜 손을 놓고 저렇게 까지 한다는 말인가...
보일러도 고장이 났는대도 기사를 부를 생각 조차도 않하고 살았습니다...
제가 비록 첫눈에 반한 여자 였고 아이를 낳고 살면서 서로의 불편한점이 있었지만 그래도 ... 이건 아닌대...
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지만... 만약 된다면 제가 못느낀 부분까지 와이프한테 물어보고 무릎꿇고 사과를 할려고 합니다.
그렇게까지라도 해서 와이프의 마음이 풀리고 다시 합치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주위에서 바보라고 합니다... 압니다.. 하지만 아들을 생각하면 전 더 한것도 할수 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말하지 못한 말들을 이곳에 쓰니 마음 한편이 편해지는것 같습니다.
긴글 장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