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정든 사진관 밀어내는 망리단길 ‘싫어요’

  • LV 12 아들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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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08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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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동도 젠트리피케이션 몸살

 

문닫는 행운의 스튜디오 자리

월세 200만원 인형뽑기방 입주

‘맛집 많아 망리단길’ 소문나며

외지인 발길만큼 임대료 급상승

주민들은 마을 지키기 서명운동

“이달 30일까지입니다. 40년 동안 도와주신 고객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는 30일 영업을 마치는 서울 마포구 망원동 '행운의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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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행운의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사진사 김선수(68)씨가 최근 가게 입구에 폐업을 알리는 글을 내걸었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만 22년째, 망원동에 있던 기간 전체를 따지면 40년간 쉼 없이 사진기 셔터를 눌러왔던 그가 남긴 짧은 두 줄의 작별 인사다.

김씨는 주민들 사이에서 ‘동네 터줏대감’으로 꼽힌다. 그는 “돈벌이는 시원치 않았지만 추억과 보람을 재산이라 여기며 자리를 지켜왔다”고 말했다. 형편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이 살던 동네였기에, 지금까지도 아기 백일과 돌 사진 가격을 22년 전 가격인 1만원에 묶어두면서 ‘마을 사진사’ 역할도 톡톡히 해왔다. 그는 7일 “망원동 땅 한 평(3.3㎡)이 1만원 할 때 가격”이라며 “돌 사진 찍은 동네 아이들 커가는 걸 보는 재미도 컸다”고 했다.

그런 그가 정든 망원동을 떠나야 하는 건 ‘감당 못할’ 임대료 때문이다. 작년 5월 새로운 건물주가 오면서 보증금 4,000만원에 매달 80만원을 내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임대료를 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홍대 상권이 연남동과 상수동을 지나 망원동까지 확장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맛집 많은 곳’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외지인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그만큼 건물 임대료가 치솟고 있다.

그의 얼굴엔 짙은 그늘이 졌다. 김씨는 “임대료를 적당이 올려 재계약을 했으면 했는데, 사실 나한테는 제의조차 없었다”며 “이 동네 임대료가 몇 배씩 뛰어 다른 자리를 구할 수도 없어 이제 일을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김씨 가게 자리에는 인형뽑기방이 새로 들어올 예정이다. 보증금은 2,000만원으로 낮아졌지만 월세를 김씨보다 2.5배 많은 200만원 내는 조건의 계약이 맺어졌다.

인근 주민들은 “남 일 같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동네 한 자리에서 28년째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심모(50)씨는 “올해만 해도 새로 계약한 임대료가 크게 올랐다”며 “이대로 가다간 우리도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라고 했다. 미용실 손님 임모(62)씨는 “정(情)만큼은 흘러 넘쳤던 동네였는데, 돈 때문에 그간 쌓아온 정까지 다 뺏기는 느낌”이라고 안타까워했다. 1980년대까지 망원동은 큰 비만 오면 곳곳이 한강물에 잠겼던 동네라, 서로 ‘물 퍼주며’ 쌓은 공동체의식이 남달랐다고 그들은 말했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40년간 '행운의 스튜디오'를 운영해 온 사진사 김선수씨가 7일 자신의 청년 때 사진을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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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치솟는 임대료를 견디지 못해, 김씨처럼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이웃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씁쓸해했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 용산구 이태원동(경리단길), 종로구 청운효자동(서촌) 일대 주민들이 겪었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둥지 내몰림 현상)’의 아픔을, 이제 이곳 망원동 주민들이 겪고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최근 2~3년 사이에는 ‘망리단길(망원동과 경리단길의 합성어)’이라는 말이 생기면서 망원동에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1일부터 SNS를 중심으로 ‘망리단길 싫어요’ 서명운동을 하고 있는 조영권(42)씨는 “1,000명 정도 서명이 모이면 각 언론사에 망리단길이란 단어 사용 자제를 요청할 것”이라며 “망리단길이란 유령 같은 단어가 돌면서 지역공동체가 빠르게 무너져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40년 영업을 마치는 서울 마포구 망원동 '행운의 스튜디오' 앞에 7일 폐업 안내문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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