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민석 판사 “구속 사유 필요성 인정 어려워”
특검 연장 안되면 불구속 기소 가능성 높아
오민석(48·사법연수원 26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는 이날 새벽 1시9분께 “영장청구 범죄사실에 대한 소명의 정도와 그 법률적 평가에 관한 다툼의 여지 등에 비추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우 전 수석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유치돼 있던 우 전 수석은 곧장 풀려났다. 이로써 특검팀이 출범 초기 박근혜 대통령의 각종 의혹을 둘러싼 주요 수사대상으로 꼽은 김기춘(78·구속기소)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재용(49·구속) 삼성전자 부회장, 우 전 수석 가운데 ‘법의 기술자’ 등으로 불리던 우 전 수석만 구속을 피한 셈이 됐다.
우 전 수석 관련 의혹은 그동안 특검팀에 가장 어려운 수사로 꼽혀왔다. 최씨의 국정농단을 묵인하고 최씨 비리행위를 들춰보려는 특별감찰관실 해체를 주도했다는 의혹은 민정수석의 업무 범위와 성격을 감안할 때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로 죄를 묻기 어려운 측면도 있는 탓이다. 또 특검팀에 파견된 현직 검사들이 우 전 수석 수사를 맡기 꺼려해 수사가 제한적으로 이뤄진 한계도 있다. 실제 특검팀은 우 전 수석의 세월호 수사 외압은 아예 수사도 하지 않았고, 특검법이 규정한 의혹에 관련된 참고인 신분의 검사들을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특검팀 대변인 이규철 특검보는 전날 브리핑에서 “수사 대상 관련해서 현직 검사는 서면조사도 직접조사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 전 수석은 전날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3시50분까지 약 5시간20분에 걸쳐 진행된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마친 뒤, 대기를 위해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전날 심문에 특검팀은 이용복(56·18기) 특검보와 양석조(44·29기) 부장검사, 김태은(45·31기), 이복현(44·32기) 검사를 투입했다. 우 전 수석 쪽은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및 형사합의부 부장판사를 지낸 위현석(51·22기) 변호사와 이동훈 변호사가 참여했다.
우 전 수석은 2009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 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한 것을 계기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대검 중수1과장이었던 우 전 수석은 2009년 4월30일 노 전 대통령을 조사했고, 5월23일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우 전 수석이 노 전 대통령에게 ‘당신은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라 뇌물수수 혐의자다’라는 말을 했다는 얘기도 퍼졌으나, 그는 이에 대해 “그런 말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여러 차례 부인했다.
우 전 수석 삶의 궤적은 이때부터 롤러코스터를 탔다. 검찰 내 손꼽히는 특수통인 그는 노 전 대통령 수사 이후 야당의 눈밖에 나면서 집권 여당에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됐다. 결국 그는 박근혜 정부 출범 첫 해인 2013년 4월 마지막 검사장 승진 인사에서 탈락하자 미련없이 옷을 벗었다. 야인으로 변호사 생활
을 하던 그는 2014년 5월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2015년 2월 청와대 민정수석을 꿰차며 박근혜 정부 최고 실세로 떠올랐다.
우 전 수석은 세월호 침몰, 정윤회 문건 유출 등 박근혜 정부가 위기에 몰릴 때마다 사태 확산을 막는 깔끔한 뒷처리로 솜씨를 발휘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을 두텁게 쌓아갔다. 그가 ‘왕 수석’이란 호칭까지 얻으며 권력의 정점에 선 것은 오히려 독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9월 박 대통령과 최순실(61·구속기소)씨의 국정농단 의혹이 세상에 알려진 뒤 박근혜 정부에서 호가호위한 실세들은 죄다 수사 대상에 올라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구속신세는 면했지만 그 역시 피의자 신분으로 특검팀의 형사처벌을 앞둔 처지에 내몰렸다.
김정필 현소은 서영지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