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우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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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14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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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아이>


제가 초등학교 5학년인가 6학년 쯔음에 겪은 일입니다.

그 때에는 여름방학 시즌에는 자주 가족과 함께 놀러가곤 했었죠.

저희 가족은 바다 보다는 계곡을 좀 더 선호하는 편이었습니다.

대부분 산 속에 위치하고 있어서 시원하기도 하고 (벌레가 좀 많긴 했지만)
바다보다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제가 수영을 잘하는 편은 아니라 계곡에서도 튜브를 끼고 놀았는데, 한창 놀다가 저녁밥 먹으라는 소리에 물 밖으로 나왔습니다.

저녁이 되니 바람도 선선히 불었고, 물에서 나오니 은근히 춥다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그런데 커다란 바위 근처에 어떤 남자애가 가만히 서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쟤도 춥겠다...'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습니다.


저녁밥을 맛있게 먹고, 꽤 주변이 어둑어둑해졌습니다.

아주 깜깜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더 이상 물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죠.

낮과는 달리, 밤하늘에 물들어 까맣게 변해버린 물 근처로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금방이라도 물귀신이 나올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아까 그 아이가 여전히 그 바위 옆에 있었습니다.

아까와는 달리 앉아있기는 했지만, 분명 그 아이였습니다.

저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 아이에게 다가가 여기서 뭐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가 저를 바라보더니 천진난만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혼자 와서 심심하거든. 나도 놀고 싶은데...."

여전히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그 아이는 "나랑 같이 놀면 안돼?"라고 묻더군요.

그래서 제가 "오늘은 말구, 내일 아침 되면 같이 놀자~"라고 대답했더니,
아이는 정말로 기뻤는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응! 나 내일도 여기 있을게!" 라고 말했습니다.

저도 외동이기 때문에 같이 놀 사람이 없었던터라 그 아이와 같이 노는 것이 기대됐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도 내일 어떤 애가 같이 놀자고 했다며 한껏 자랑을 하고,
기쁜 마음으로 잠이 들었죠.


하지만 다음 날 아침, 그 아이가 기다린다고 했던 바위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실망하는 저를 보고 어머니는 아침밥을 먹고 나오느라 늦는거라며 조금 기다리라 하셨지만,
제가 점심을 먹고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될때까지도 그 아이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의 가족이 먼저 돌아간 모양이라고 어머니는 저를 위로하셨고,
약간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우리 가족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피곤했는지 저는 일찍 잠이 들었고, 새벽 쯤에 잠이 깨었습니다.

희미하게 무슨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때도 눈이 좋지 않아 안경을 썼는데, 잘 때는 안경을 거실에 벗어놓고 오기 때문에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았죠.

그런데 방 구석에서 무슨 소리가 나면서, 빛이 들어왔다 나갔다하는 게 보였습니다.


제 책상에 놓여 있는 스탠드였죠.

제 스탠드는 터치형 버튼으로, 켜질 때마다 '삑'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지금도 쓰고 있어요!)

그게 규칙적으로 켜졌다 꺼졌다 하면서 '삑' 소리가 나고 있었던 겁니다.

빛이 들어올 때마다 희미하게 무언가가 보이긴 했지만 눈이 좋지 않아 제대로 보지는 못 했어요.

새벽이기도 하고 잠이 덜 깨기도 한 상태라 조금 짜증이 나더라구요.

"누구야? 장난치지 마!" 하고 소리쳐 버렸죠. ㅎㅎ

그랬더니 소리가 뚝 멈추고, 조금 후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심심해...아까는 못나와서 미안... 지금, 같이 놀면 안 돼?" 라고 하더군요.

계곡에서 만났던 그 녀석이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순간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저도 모르게 "안 돼, 가!"라고 소리쳐 버렸습니다. 

그러자 "그럼 내일..." 하며 까르륵 웃음소리가 나고는, 사라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 스탠드는 멀쩡했고 저는 그냥 꿈이라고 생각했지만,
문제는 그 날 밤에도 그 아이가 찾아온 것입니다.

책상 위 스탠드 앞에 쪼그려 앉아 저를 보고 있떠라구요.

저는 못 본 척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삑삑 대던 소리가 멈추고, 이내 정적이 찾아왔습니다.


'이제 갔나...?' 싶어 안심하려는 순간, 제 손에 무언가가 닿았습니다.

저는 너무 깜짝 놀랐지만 왠지 눈을 뜨면 안 될 것 같아서 눈을 꽉 감고 있었어요.

손바닥에 닿는 것은 누군가의 얼굴 같았습니다.

그 아이가 제 손바닥에 얼굴을 갖다 댄 채로, '심심한데...'라고 중얼거리고 있더군요.


저는 눈을 꼭 감은 채 '제발 가! 제발 가란 말이야!!' 하고 속으로 외쳤습니다.

그런데 몇 분이나 지났을까요. 손에 무언가 차가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눈을 뜨자, 그 아이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제 손을 꼭 잡고 얼굴을 묻은 채 울고 있는 그 모습이...


아이는 고개를 들지 않았습니다. 그냥 울기만 했고, 저는 왠지 미안한 생각에,
"미안해. 난 너랑 같이 못 놀 것 같애..."라고 말해주었죠.

그 아이는 계속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는 사라졌습니다.


다음 날 일어나보니 저는 그 아이가 붙잡고 있던 손을 꼬옥 쥐고 있었습니다.

꿈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생생했죠. 아이가 흘리던 차가운 눈물의 감촉이...

그리고 저는 스탠드를 켜고 잤다고 어머니에게 왕창 혼났습니다. ^^;


꿈을 꿨던걸까요. 아니면 그 아이는 정말로 저를 찾아왔었던 걸까요.

지금에서야 생각하는 거지만....

그 아이가 고개를 들지 않아주어서 정말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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